짧은 글/여행

2024년 여름 몽골여행/0-1일차/인천공항-칭기즈칸공항-바가가즈린출루

도린매시 2024. 8. 14. 12:47

 
얼마 전 서촌에서 사주를 본 뒤로 꽤 오랫동안 사주에 미쳐있다. 8자 중 4자가 비겁인 팔자답게 남의 사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 팔자와 대운의 흐름을 열심히 해석하고 있다. (가끔 남편 팔자도 봐주긴 한다. 우리는 의외로 궁합이 아주 좋은 것이 신기하다.) 무튼 내 사주에는 인성의 역할을 하는 물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이걸 채워야 나에게 득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 다시 공부해보니 나에게 아예 없는 요소는 용신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이미 나무가 넘치는 신강 사주여서 인성의 도움을 받아 더 강해지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극하는 금(金)이나 내 기운을 빼는 불(火)이 오히려 나에게 이롭다고 한다. 다만 요즘 역술인들은 다르게 풀기도 한다. 잘생긴 글자 하나만 잘 써먹고 산다면 균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두 관점을 적당히 다 받아서 대운의 흐름이 바뀌는 48세까지는 나를 극하는 관성(금)보다는 나를 표출하는 식상(불)을 비겁(나무)과 함께 발달시켜보기로 했다. 48세 이후에는 관성을 잘 써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면 좋겠다. 묘묘병존을 가진 나무인 나는 안 그런 척하지만 관심받는 것을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28세부터 대운에 들어와있는 물과 나무의 기운에 질식되지 않기 위해 불로써 균형을 맞춰보려고 한다. 유튜브까지 손댈 기력은 없고 적당히 블로그가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난 여행을 좋아하고 지금 몽골에 있으니까 여행기를 먼저 써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얘기도 할 짬이 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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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08.04. 몽골여행 기록.

어쩌다보니 몽골에 오게 되었다. 비행기 예약부터 출국까지 대략 2주가 걸렸다. 표가 없어서 얼떨결에 몽골항공 새벽 비행기를 비즈니스 좌석으로 끊게 되었고, 동행을 구할 시간과 여력도 없어서 남편과 단둘이 투어를 했다. 비즈니스가 생각보다는 저렴해서 기분 좋게 예약했는데 미리 예약해서 절반 가격에 다녀온 후기들을 읽으면 배가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무튼 비즈니스 좌석 경험 자체는 만족스러웠다(단, 인천->울란바타르 편도 한정! 울란바타르->인천 좌석은 아주 달랐다). 3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동안 새벽 밥도 야무지게 먹고 한 시간 넘게 편하게 잤다. 소고기 스테이크, 연어, 감자 다 맛있었다. 더부룩할까 봐 빵은 패스했는데 돌아갈 때에는 저녁이니까 제대로 먹어봐야지.
 
예정보다 일찍 착륙한데다가 입국 심사와 짐찾기 모두 후다닥 끝나버려서 투어사보다 한참 일찍 입국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 시간정도 공항 구경을 하며 기다리니 투어사 사장님과 가이드겸기사님이 오셨는데, 예상치 못하게 가이드님이 한 분 더 오셨다! 우리는 SUV를 예약해서 가이드겸기사님 한 분과 함께 셋이서 돌아다닐 것이라고 들은 상태라 다소 의아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 따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주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결국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여름 성수기의 몽골 관광업계는 많이 혼란스러운 듯 하다. 관광 수요를 허겁지겁 따라가다보니 차량, 숙소 등 자잘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주 오래 사신 다른 가이드 분은 중간에 울란바타르로 돌아가셨는데, 결론적으로 흥미롭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덕분에 울란바타르의 부촌이라는 자이산(Zaisan) 구경도 슬쩍 했다. 
 

 
다시 첫째 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는 바가가즈링출루(Baga gazriin chuluu)로 향했다. 나중에 가이드겸기사님과 한잔 하며 들어보니 보통 이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면 운전이 위험해서 공항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면 행선지로 출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술한 속사정 때문에 작은 트러블이 발생했던 터라 가이드겸기사님이 생각하시기에 더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출발하셨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용? ㅎㅎ"하고 차에 타 있었다. 조명, 노면, 도로 위의 느긋한 무법자(?) 등 몽골의 도로 상황은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무튼 그렇게 우리는 바가가즈링출루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고 덕분에 도로 위에서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이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비로소 우리가 정말 몽골에 도착했음을 느꼈다.
 
위 사진과 같은 포장도로를 달리며 "몽골 도로 상태가 안 좋다더니 역시 그렇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후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방금 전의 요철은 귀여운 수준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수준의 비포장… 우리는 4박 5일의 비교적 짧은 일정이기 때문에 테를지, 미니사막, 쳉헤르 등을 가는 중부투어를 선택했었는데, 몽골에 가서 고비사막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미니사막 엘승타사르해를 빼고 바가가즈링출루를 첫 번째 코스로 추가했다. 이 제안을 투어사에 말씀드리니 상담해 주시던 분이 아주 곤란해 하며 길이 상당히 험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몽골의 비포장도로를 경험해 보고 나서야 그 경고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 특히나 이전 주에 비가 많이 와서 군데군데 땅이 파여있었고 큰 돌도 많아서 미쓰비시 SUV가 사륜구동이 아니었으면 분명히 문제가 생겼을 것 같다. 와중에 이런 비포장도로를 감속 없이 달리는 푸르공들을 보며 아 푸르공이 감성만 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SUV는 잔고장이 거의 없고 포장도로 승차감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바가가즈링출루로 향하는 길 외에는 포장도로의 지분이 높고 쳉헤르 온천에 갈 때에는 어차피 비 때문에 푸르공을 빌려 탔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SUV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우리의 첫 숙소! 바얀불락(Bayanbulag) 투어리스트 캠프라는 곳이다. 고비사막 캠프들은 상태가 좋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샤워시설도 괜찮고 게르도 동물 가죽 냄새가 조금 나는 것을 제외하면 좋았다. 이후 중부지역의 숙소들은 수준이 점점 좋아졌기 때문에 첫 숙소로 로컬에 가까운 게르가 배정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 식사는 몽골 캠프식 중 최고였다. 아침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삼겹살을 먹은 저녁을 제외하고 아침, 점심, 다음 날 아침까지 총 세 끼를 이곳에서 먹었는데 모두 맛있게 먹었다(심지어 염소고기까지). 다만 이때까지는 그 식사가 아주 맛있는 편이라고 생각 못 했었지... 전기와 온수 사용이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인터넷은 물론이고 통신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이 지역 캠프면 당연한 거라고 했다. 덕분에 남편은 회사 연락을 전면 차단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생겼다.

 


분명 날씨가 괜찮았는데 우리가 다시 차를 타고 바가가즈링출루 구경을 시작하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때는 몰랐지 이 먹구름이 우리의 여행을 어떻게 바꾸게 될 지... 바가가르징출루는 사진처럼 평원에 크고 작은 화강암 암석 지대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고비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전형적인 몽골 초원과 사막 지역 중간 쯤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고비사막 투어를 하는 팀은 바가가즈링출루를 제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던데 평화로운 중부투어에 야생을 한 스푼 더하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이 때는 날씨가 다시 괜찮아보이는데 아마 내 뒷편에는 먹구름이 끼어있었을 거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장소명을 모르겠는데 사진 위치정보를 확인하니 'Dundgovi'라고 나온다. 20세기 초 소련이 영향력을 발휘할 때 불교를 탄압하며 스님들을 학살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여기에 스님들이 도피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는 좁고 의외로 암석으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큰 공간이 있어 은신처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 말고도 몽골 제국의 수도 하라호름을 비롯한 몽골 곳곳에서 사회주의 세력에 의한 탄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의 기성 세대들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은 편인데, 젊은 가이드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젊은 세대들은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 경제적 기회를 탐색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고도 한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몽골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가진 것이라곤 인적자본뿐인 우리나라는 태평양과 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우리나라 초기 세팅값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몽골에 비하면 양반이다. 심지어 몽골은 지하자원도 풍부한 편인데 지정학적 여건이 너무 불리하다. 그것이 징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영토 확장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이유들 중 하나 아닐까. 
 


가이드님이 이 풀에 쓸리면 화상입은 것처럼 피부가 다친다고 주의하라고 해서 찍어둔 사진.

 
울퉁불퉁한 골목을 지나오면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몽골 초원과 사막에서는 이렇게 큰 나무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스님들이 숨어 지냈던 돌로 된 은신처를 지나 약간의 등산을 하고 나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인생샷 스팟이 몇 군데 있어서 젊은 가이드님이 열정적으로 사진을 남겨주셨다. 날씨만 맑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또 다른 곳. 아주 깊은 동굴이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밖으로 각도를 잡으면 인물 사진이 잘 나오는 듯. 가이드님이 산양 똥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직접 보지는 못해서 아쉽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도망간 걸까.
 
동굴에서부터 가랑비가 장대비로 바뀔 기미가 보여서 급히 숙소로 돌아와 저녁 전까지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찬물 샤워(온수가 안 나와서...)를 하고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몽골에서는 특별히 관광지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여행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지평선이 보이는 조용한 곳에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 그저 좋았다. 게르에서 쉬고 있으니 가이드님들이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며 식당으로 부르셨다. 몽골 여행 첫째 날에 삼겹살을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역시나 삼겹살은 맛있었다. 가이드겸기사님이 몽골 약주를 준비해 오셔서 함께 먹었다. 약재향이 나는 도수 높은 술이었는데 찾아보니 잘 나오지 않는다. 여행 내내 이 술 아니면 맥주를 마셨고, 마지막 날에 가이드겸기사님이 선물까지 해주셨다! 사업차 몽골에 방문하는 한국분들이 되게 좋아하신다고 한다.
 

 
다행히 밤이 되니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사막 지역이 별이 잘 보인다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기대를 했는데 구름이 많아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새벽 두 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깨서 게르 밖에 나와보니 쏟아질 듯한 별이 보였다. 이 순간을 위해 한국에서 돗자리를 가져왔다. 달이 숨은 시기라서 잠시 돗자리에 누워 있으니 은하수는 물론이고 유성까지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에 모두 담지는 못했고… 눈에 담았다. 4박 5일 중 유일하게 별을 본 날이다. 이후 이틀은 비가 쏟아졌고 마지막 쳉헤르에서는 여독이 쌓였는지 너무 졸려서 새벽에 깨지 못했다. 남편만 잠깐 나갔다가 왔는데 그 날도 별은 잘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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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블로그 글 하나 올리는 게 쉽지 않다... 비오던 날 테를지 숙소에서 작성을 시작했는데 폭염 속 서울에서 작성을 마친다. 하나 완성하기까지 거의 2주가 걸렸다. 별 내용도 없는 것 같은데. 쓰다보면 점점 익숙해지겠지?
 
이제 테를지 국립공원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