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마지막 날의 해가 밝았다. 오늘은 전 일정 중 가장 긴 이동이 예정되어있던 터라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가이드님이 먼저 우리를 깨운 건 처음이었다. 나는 어제 씻지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에 짐은 대충 싸고 급하게 샤워실로 향했다.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샤워부스를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어느 부스에서도 만족스러운 물줄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찝찝하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씻고 게르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의 여행에서는 대부분 마지막 날의 날씨가 제일 좋았다. 하와이에서도, 보라카이에서도, 몽골에서도. 맑은 하늘 아래의 몽골은 정말 아름답다. 
 

 
노천탕은 이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샤워실로 씻으러 들어갈 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게르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저씨 한 명이 탕 안에 들어가 계시더라. 이때는 온천수가 좀 뜨거울 수 있다고 후기에 쓰여있지만 그래도 새벽에 들어가면 저녁이나 밤에 비해 훨씬 쾌적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리의 미쓰비시 SUV를 두고 온 주유소로 향하는 길. 잠깐 멈춰설 때마다 타르박인지 마멋인지 설치류처럼 보이는 동물이 눈에 띄었다. 마멋을 구글링하면 무섭게 생긴 아이들 사진이 많이 뜨던데 내가 본 친구들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포장도로와 재회하고 주유소에서 차를 갈아탄 우리는 울란바타르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 뒷자리에서 졸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가이드님께서 잠깐 CU에 들러서 아침을 먹자고 하셨다. 숙소에서 아침을 포장해 오기도 했고, 몽골 CU에서는 커피, 샌드위치, 삼각김밥(!) 등 다양한 요깃거리를 판다.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차를 오랫동안 탈 때면 CU에 종종 들러왔다. 요즘 몽골에는 CU가 곳곳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날 들른 곳도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에 있는 CU였다. 가이드님도 이런 시골에 CU가 들어와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잠깐 앉아있다보니 트럭 운전사와 같이 길게 여행하는 현지인들이 잠을 깨고 요기를 하기 위해 즐겨 찾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 먹고 싶은 건 없어서 숙소 아침(빵, 오이, 계란 등 일반적인 캠프식)과 함께 따뜻한 라떼만 한 잔 마셨다. 특이하게 여기서는 커피머신으로 일반 아메리카노를 내린 후 흰색 가루를 타서 라떼를 만든다. 한국 CU에도 이게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루에 단 맛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에서 먹는 믹스커피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러운 맛이랄까. 그 맛이 의외로 괜찮아서 두 번 정도 마셨다. 무튼 몽골 시골 마을까지 야무지게 자리잡은 CU 대단하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한참을 달리던 중 어르헝 계곡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 날에 어기호수에 가며 잠시 들렀던 하라호름을 지나치게 된 것이었다. 새벽부터 달려와 시간 여유도 조금 생겼고, 기사님도 어딘가에서 마트를 들러야겠다고 하시기에 하라호름 박물관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에르덴조 사원에는 폐장시간에 임박하여 도착해서 실내 전시실을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기사님은 흔쾌히 승낙하셨고, 본인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동안 젊은 가이드님과 셋이 둘러보고 오라고 하셨다. 

하라호름 박물관 입구. 현대 몽골에서는 몽골식 키릴 문자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몽골어를 표기하는 고유 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몽골 여행 중 흔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림 액자 등에서 꼬불꼬불하고 길쭉한 몽골 문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여기 박물관 입구에도 쓰여 있었다.
 

 
하라호름부터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를 나타낸 표지판. 울란바타르까지 아직 360km…
 


13세기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칸이었던 오코타이 칸에 의해 건설된 하라호름의 모습을 나타낸 모형이다. (사실 박물관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상당히 비싼 사진 티켓을 구입해야 했다…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자마자 직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왼쪽에 성대했던 에르덴조 사원이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당대에 벌써 전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사는 코스모폴리탄이었다는 하라호름.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박물관 근처, 옛날 하라호름의 중심이었던 자리에는 은나무(Silver Tree)라는 거대한 나무 모양 조각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지금은 사라진, 하라호름의 옛 영화를 나타내는 듯 했다. 심지어 과거에는 나무에서 우유, 전통주 등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었다고 한다.


박물관 본관 옆에서는 몽골 전통놀이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아래는 양의 발목뼈로 만든 주사위(!) 샤가이이다. 젊은 가이드님 얘기로는 옛날에 할머니 집에 가면 이게 잔뜩 있었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게임 종류가 많은데, 공기 같이 노는 방법도 있고 네 개를 던져서 서는 방향에 따라 하루의 점을 쳐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도 던져봤는데 네 개가 전부 다른 가축(양, 말, 낙타, 염소)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운수가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마트에 들러서 물을 사오신 기사님과 다시 만나고 울란바타르로의 여정이 계속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지난 날 비가 쏟아져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던 엘승타사르해(미니 사막)에도 잠깐 들렀다. 낙타들은 인도에서 봤던 애들보다 건강해 보였다.


도로에서 만난 말들. 갑자기 차가 느리게 가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말들과 마부들이 곳곳에 모여있었다. 승마대회인지 어떤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구경하고 가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갈 길이 멀기에 말을 삼켰다.


넓디넓은 초원만 반복되는 차창 풍경을 보고 있다보면 새로운 자극이 소중하다. 가끔 저렇게 넓은 노란색 꽃밭이 나오더라. 무슨 꽃인지는 두 가이드님도 알지 못 했다.


이건 그냥 하늘과 구름이 예뻐서. 마지막 초원 사진이다!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진입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초입에 젊은 가이드님을 내려드렸다. 울란바타르 서쪽 끝에 내려드렸는데 가이드님은 동쪽 끝에 사신다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울란바타르의 교통체증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 몽골에 또 오게 되면 울란바타르에 숙소를 잡고 둘러봐야겠다. 무튼 젊은 가이드님과는 여기에서 굿바이. 내리기 전에 메모장에 적어두신 할 말(덕분에 재미있는 여행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이드님은 전문 가이드가 아닐뿐더러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신 참이라 국내 여행을 거의 못 해봤다고 하셨다)을 읽어주셔서… 눈물이 찔끔 날 것도 같았다. 다행히 요즘 세상에는 인스타그램이 있어서. 영원한 굿바이는 아닐지도!

우리는 울란바타르 시내 대신 고비 캐시미어를 선택했다. 가이드겸기사님의 추천으로 시 외곽에 있는 팩토리 스토어에 방문했는데, 물건도 많고 괜찮았던 것 같다.여기 밖에 안 갔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하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나와 남편 것으로는 니트를 하나씩 사고, 양가 어머니들 머플러를 공평하게 하나씩 샀다. 가격이 싸지는 않은데, 캐시미어 질은 좋아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칭기즈 칸 공항에 도착했다. 점심도 거른 터라 배가 많이 고팠는데, 공항 1층에서 라멘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드겸기사님이 보따리 하나를 푸시더니 우리가 항상 먹던 몽골 술(!)과 함께 몽골 잣을 선물로 주시는 것 아닌가. 우리도 마침 최종(두 번째) 팁을 드리려고 했는데… 흡사 자강두천.

여행 내내 가이드겸기사님과 두 젊은 가이드님들 덕분에 정말 편하게 다닌 것 같다. 막연하게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몽골 여행이다. 가이드님들이 있으니 여행이 더 풍부해지기도 하더라. 물론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운이 따르기도 해야겠지만.

마지막으로 가이드님과 굿바이를 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마그넷을 사려고 둘러봤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대신 샤가이를 팔고 있기에 4개 구입했다. 몽골항공 비즈니스 라운지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고, 병맥주(생맥주는 다 떨어지고 없었다)와 샐러드(여행 내내 싱싱한 채소가 너무 먹고 싶었다)를 주워 먹었고, 태고의 시간들을 조금 더 읽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장의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남편은 여행 다녀와서 거의 일주일을 고생했다. 마지막 숙소에서 먹은 저녁이 제일 의심이 간다.


무튼 이렇게 4박 5일 몽골 여행은 끝이 난다! 여행 블로그는 생전 처음 써보는데, 이렇게 곱씹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릴 기억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미 한 달이 지난 여행이지만 그 때의 마음이 다시 재생되기도 하고, 익숙한 사진을 보며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앞으로도 여행을 가게 되면 꾸준히 써 볼 예정이다. 지난 달에는 여행 말고도 대소사가 참 많았는데, 조만간 생각 정리 블로그도 써 봐야겠다.


전날 술을 마셔서 그런지 넷째 날 아침에는 눈이 일찌감치 떠졌다. 저녁 늦게 도착하여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한 어기호수를 구경할 겸 달릴 채비를 했다. 남편은 더 잔다고 했다.


호숫가를 조금 달리고 멀리서 우리 숙소를 찍은 사진. 어제보다는 날씨가 한결 개었다. 호수는 정말 넓어서 바다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날이 좋으면 수영도 할 수 있다던데, 역시나 오늘도 날씨가 아쉽다. 호숫가에는 똥이 많아서 잘 피해서 뛰어야 했다. 비가 온 뒤여서 그런지 벌레는 많지 않았다.


조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며 찍은 사진. 가운데 큰 건물에 식당과 화장실/샤워실이 있고, 우리는 게르 옆에 보이는 네모난 집에 묵었다.

남편과 아침식사를 하고 방에 돌아왔다(여기 소시지는 냄새가 정말 많이 났다). 쉬다가 가이드님께 전화를 드리니 우리 방에 와서 일정 브리핑을 해주신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우선 울란바타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길에 야생말을 볼 수 있는 국립공원(지금 찾아보니 Hustai National Park란다)에 들러 하루 묵는 방법. 투어사에서는 이쪽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동거리가 줄어들테니까. 아니면 전날 대체지로 언급되었었던 어르헝(Orkhon) 폭포에서 묵고 다음 날 울란바타르로 향하는 방법. 쳉헤르는 여전히 들어갈 방법이 없는 듯 했다.

남편은 나에게 선택권을 위임했고 나는 어르헝을 선택했다. 복원한 야생말이라니 흥미롭게 들리긴 했으나, 몽골 제국의 코스모폴리탄 수도가 자리잡았던 어르헝이 더 궁금했다. 이왕 서쪽 멀리 온 김에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는 어르헝 폭포로 결정되었다(… 결정되는 듯 했다). 이쯤 되니 몽골 여름 성수기에 숙소, 차량 등에 관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하루 만에 숙소를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행선지를 정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보니 투어사에서 연락이 왔다. 쳉헤르에 들어갈 방법이 생겼다고. 우리와 함께 어기호수에 묵었던 한 팀이 푸르공을 근처에서 빌릴 수 있게 되어서, 우리도 그걸 타고 쳉헤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뜨끈한 온천이 간절했던 참이라 우리는 곧바로 제안을 수용했고, 기분 좋게 쳉헤르로 향했다. 다른 팀과는 쳉헤르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의 초입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쳉헤르로 향하는 길에 만난 어르헝 계곡의 지류. 항상 산세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곡들과는 다르게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흐른다는 점이 생경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기회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몽골에 오게 되면 어르헝과 나이망 호수 지역을 둘러보고 싶다. 날씨운이 많이 따라줘야겠지만.


다른 팀에서 마유주를 산다고 해서 잠시 들른 현지인 게르. 말을 지키고 있는 개가 귀여웠다.


우리를 쳉헤르로 데려다 준 푸르공! 러시아 군용차였다는 푸르공은 대부분 몇십 년은 된 차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가 손에 익은 푸르공 기사님들이 여행 내내 차를 고치고 관리하며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푸르공의 주인인 기사님도 푸르공만큼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푸르공이 기다리고 있던 주유소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꼬치구이와 맥주)을 먹고 쳉헤르로 출발했다.


역시나 곳곳에 웅덩이 천지였던 쳉헤르 가는 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차들도 몇 보였다. 그 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쳉헤르 가는 길은 쳉헤르만큼이나 (어쩌면 쳉헤르보다) 아름다웠다.


우리의 푸르공도 언덕길에서 한 번 멈춰섰다. 고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려서 쳉헤르에 들어가 있는 푸르공을 하나 부르려고도 했는데, 조금 더 기다리니 다행히 고쳐졌다. 푸르공을 타고 몽골 여행을 한다면 이렇게 쉬는 시간이 종종 생길 것 같다. 그것 또한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푸르공의 내부는 이렇다. 천장의 쿠션은 머리 박을 일이 많아서 설치해 둔 듯 싶다. 푸르공 내에서도 앞자리 뒷자리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오갈 때 모두 앞자리에만 앉았다. 뒤에도 앉아보고 싶었는데 동행한 젊은이들이 배려해 준 걸까. 쳉헤르행에 함께한 젊은이 네 명은 대학생쯤 되어보였는데, 점심 먹으면서 맥주를 나눠주었을 때 빼고는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혹은 혼자 여행 중이었다면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긴 이동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 남편은 외향형(E)이면서 내향형(I)인 나보다 낯을 더 가린다. 외향-내향과 외성-내성 구분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그런 문제인 걸까.


몽골에서 흔히 보이는 평원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던, 쳉헤르 가는 길. 누가 처음 이 산중의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쳉헤르에서는 한국인들 후기도 많은 항가이(Khangai) 리조트에서 묵게 되었다. 당일 예약을 한 셈이니 선택권이 거의 없었겠지만… 방문했던 4개 숙소 중에서는 제일 아쉬운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게르에서는 난방을 위해 장작을 밤새 계속 투입해 줘야 했는데, 이를 놓치는 바람에 새벽에는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사실 이건 우리의 책임이니 숙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 남편과 나 모두 배탈이 난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님… 폐장 직전까지 노천탕과 샤워실 모두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못 씻고 잔 것도…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도 물이 거의 빗줄기처럼 졸졸 나와서 힘들었다. 그동안 좋은 숙소에만 묵어버릇해서 버릇이 나빠진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4박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우리를 괴롭힌 것은 숙소 뿐만이 아니었는데…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이 남아 승마체험을 다시 하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테를지에서 승마를 할 때에는 날씨가 흐렸어서, 맑은 날에 승마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숙소 근처의 마부들에게 물어 승마체험을 시작했는데… 마부들이 따라 오지 않는 것 아닌가? 몽골인 가이드 두 분이 말을 탈 줄 아니까 넷이서 다녀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헬멧도 쓰지 않았는데. 젊은 가이드님은 말을 타지 않은지 오래 됐다고 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거의 단독으로 승마를 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건 좋았다.

약 15분 정도 이동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멈춰선 것이 발단이었다(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내 말의 고삐에 이어진 줄을 잡고 있던 젊은 가이드님이 줄을 놓치자 모든 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성격이 더럽다는 가이드겸기사님의 말은 이때다 싶었는지 날뛰면서 가이드님을 떨어트렸고… 젊은 가이드님도 말에서 떨어졌다. 가이드겸기사님으로부터 해방된 남편의 말은 저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에서 내리는 법을 몰라 한동안 타고 있다가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의 엉덩이 쪽으로 내렸다고 한다. 이게 알고 보니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말이 흥분해서 발길질이라도 하면 얻어맞기 딱 좋은 위치라서 그렇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이 아수라장 속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나의 말만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가이드님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말에서 내렸고, 가이드겸기사님은 내 말을 타고 도망친 말들을 잡으러 가셨다. 나와 남편은 놀란 것을 빼면 괜찮았는데 가이드 두 분은 손과 팔에 상처를 하나씩 남기셨다… 젊은 가이드님과 셋이서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가고 있자니 기사님이 말들을 전부 되찾아놓곤 어린 마부들을 꾸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가장 난리를 친 기사님의 말이 마부들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말인데 이들도 성격이 더러운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정도로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엄청난 액땜이었다. 뭐 남편은 덕분에 달리는 말에도 타보고… 승마 실력이 순식간에 늘겠다(럭키비키..)


이렇게 대단한 모험을 하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이번엔 온천 수원지로의 모험이다. 소똥인지 말똥인지 알 수 없는 똥들을 피하며 산기슭으로 향하니 수원지부터 각 리조트까지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는 파이프들이 눈에 띄었다. 정부나 기관 개입 없이 각 리조트에서 설치한 파이프들인지 모두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다.


이곳이 쳉헤르 온천의 수원지. 여기에도 몽골 성황당이 지어져 있다. 돌을 하나 올려놓고 기도를 드리는 듯한 현지인도 보였다. 유황 온천수가 적당히 뜨거워서 여기에 계란을 넣고 삶아먹는 것도 가능하단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잠시 자다가 저녁을 먹고 온천을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탕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잠깐 앉아있다가 나왔고 샤워실 줄이 너무 길어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어야 했다. 외국인 관광객 뿐만 아니라 몽골 현지인 관광객도 많은 듯 했다. 곳곳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4일차가 끝났다. 블로그를 쓰며 기억을 되짚다보니 쳉헤르 말고 본래 계획대로 어르헝 폭포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쳉헤르에 아쉬움이 남았겠지?

이전에 적었듯이 밤에는 날이 완벽하게 개어서 별 보기 좋은 날이었지만 나는 쿨쿨 자느라 보지 못했다. 다음 포스팅은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이다!

 
셋째 날 새벽에는 귀를 때리는 빗소리에 잠이 깼다.


어젯밤부터 비가 오기는 했지만 이렇게 많이, 오랫동안 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숙소가 튼튼해 보이지 않았으면 조금 무서웠을 것도 같다.


비가 잦아들길 기다릴 법도 하지만 오늘은 4박 5일 중 가장 멀리 이동하는 날(500km 이상)이기에 일찌감치 출발했다. 아침으로는 미역국, 김치 등 한식을 먹었는데 맛은 그저 그랬다. 캠프 내 카페에서 라떼를 팔던데 스타벅스보다 비쌌다. 바가가즈링출루에 비해 테를지는 관광지 느낌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오늘도 힘겹게 울란바타르 시내를 빠져나오고 쳉헤르로 향하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다. 위 사진 위치정보를 확인해보니 Töv라는 곳 근처다. 양고기 냄새에 조금 지쳐있던 나는 닭다리살을 주문해서 먹었다. 그리고 가이드님을 따라 우유차(?)를 주문했는데, 우유에 뜨거운 물을 타고 소금을 첨가한 맛이었다. 가이드님 말로는 처음엔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중독성이 있다고 한다.

아, 오는 길에 울란바타르에서는 또다른 젊은 가이드님을 픽업했다. 처음부터 함께 한 가이드겸기사님은 사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 여러가지를 함께 하고 계시는데, 본인 사업에 일손이 부족할 때 일을 부탁하던 울란바타르 대학생이라고 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대학교에서 한국어교육을 공부해서 소통이 쉬웠고 이후 여행 기간 내내 정말 세심하게 잘 챙겨주셨다. 몽골을 여행하는 동안 두 가이드님을 비롯해 몽골 젊은이들을 많이 만나서 이것저것 물어볼 수 있어서 참 좋았다. 지금까지 해외여행을 하며 일정 내내 가이드와 동행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이게 가이드 여행의 특장점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휴게소를 빠져나오니 비가 점점 더 많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어사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쳉헤르로 들어가는 길이 워낙에도 험한 오프로드인데 어제와 오늘 비가 많이 와서 차가 침수될 정도의 계곡이 생겼다고… 다른 투어팀들은 대부분 쳉헤르를 포기하고 어기호수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푸르공도 건너기 어려운 계곡을 SUV가 건널 수 있을 리 만무하였다. 결국 어기호수에서 하루를 보내면서 경과를 지켜보기로 결정하였다. 원래는 쳉헤르 온천 다음에 어기호수를 갈 예정이었는데, 순서만 바뀌는 정도니 괜찮을 것 같았다. 
 
사실 더 이상 이동하지 말고 미니사막(엘승타사르해)에서 멈춰서 근처 좋은 숙소에서 하루를 보내는 게 어떠냐는 투어사의 제안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미니사막은 여행 전부터 가고 싶지 않아서 일정에서 굳이 뺐었는데, 캠프가 좋다고 해서 아까운 하루를 여기에서 날리고 싶지는 않았다. 비를 뚫고 어기호수까지 가야하는 기사님께는 죄송했지만... 에르덴조 사원을 들러서 어기호수로 향하기로 했다. 지루하지만 평화로운 이동과 하루의 보상 같은 온천을 기대했던 셋째 날이 무거운 비와 급박한 일정 변경 속에서 흘러갔다. 

 
저녁시간, 폐장시간이 다 되어서야 에르덴조 사원에 도착했다. 우리 팀이 마지막 입장객이었던 듯 하다. 에르덴조 사원이 위치한 하라호름(Kharakhorum)은 13세기 몽골제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2대 칸에 의해 완성되고 수도로 사용된 것은 20-30년 남짓이라던데. 평원을 굽이굽이 흐르는 어르헝강을 보고 있자면 칸들이 이곳을 제국의 수도로 선택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몽골 땅은 넓은 만큼 다양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가랑비가 내리는 에르덴조 사원은 광활한 만큼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듣기로는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부분 몽골 제국 멸망 이후에 지어진 것들이며 그마저도 러시아와 중국의 침략을 받은 20세기를 지나며 많이 훼손된 상태라고 한다. 보존 상태가 아쉬운 편이었다.
 

 
사원을 거닐고 있으니 살가운 고양이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가까이 오는 걸 보면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거의 없는 듯 했다. 
 

 
사원 터는 이렇게 거의 비어있다. 대지에 박혀있는 기초석이 사원의 규모를 가늠하도록 해준다. 
 
에르덴조 사원을 떠나 근처 마트를 잠시 들른 후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 어기호수로 향했다. 마트에서는 유독 전통 복장을 입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가이드님께 들어보니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 하듯이 몽골의 불교인들은 에르덴조 사원에 방문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는다고 한다. 하라호름과 에르덴조는 몽골인들에게 그만큼 의미가 있는 장소인 듯 하다. 
 

 
어기호수 가는 길 part 1. 아직은 포장도로. 아무리 포장도로여도 몽골의 자연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특히 저녁시간이어서 그런지, 귀가하는 가축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양과 염소는 자동차를 무서워해서 잘 피하는 편이다. 마소는 우리가 기다려야 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엄청난 속도를 내며 달려주신 기사님… 다행히 몽골의 여름은 낮이 길다.
 

 
어기호수 가는 길 part 2. 어느 순간 포장도로가 끊기고 비포장도로가 시작된다. 갑자기 뚝 아스팔트 도로가 사라진다. 비포장도로는 비가 온 직후라서 상태가 더 심각하다. 에르덴조 사원에서 기사님께 팁을 드리길 잘 했다고 생각하며, 바퀴가 어딘가 박히거나 찢기지 않길 기원한다. 앞으로 차는 사륜구동만 타야지 다짐한다. 
 

 
한참 오르막길을 올라오니 내리막의 시작점에 도달했다. 저 멀리 보이는 호수가 바로 어기호수란다. '어기(Ugii)'가 몽골어로 어머니라는 뜻이라던데, 험난한 여정의 끝에 마주한 어기호수는 이름에 걸맞는 위엄을 지닌 듯 했다. 정상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고 용맹한 도요타 코롤라 무리를 뒤따라 갔다.
 

 
우여곡절 끝에, 해가 아주 숨어버리기 직전에 도착한 오늘의 캠프. 사실 우리는 사진에 보이는 게르가 아니라 나무로 된 오두막에서 묵었다. 이곳도 개업한지 오래 되지 않은 고급 숙소였다. 화장실은 외부에 있었지만 방과 침대가 넓었고, 어기호수를 향하고 있는 테라스에서 멋진 전망을 즐길 수 있었다. 몽골인 관광객도 몇 명 묵고 있는 듯 했다.

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도착하니 투어사 사장님과 다른 한국인 관광객들은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내일은 어디로 가느냐고 가이드님께 물었고 아직 논의 중이라고 답하셨다. 이 날도 약주를 한 잔 했고, 긴 여정의 끝에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몽골 여행 2일차 기록이다. 거의 밤을 새고 바가가즈링출루까지 운전해 오신 가이드님들은 더 주무시게 두고 남편과 둘이서 아침식사를 했다. 사진첩을 확인해 보니 음식 사진이 거의 없는데, 내가 워낙 음식 사진을 잘 찍지 않기도 하지만 몽골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기 때문인 것도 있다… 대부분 음식에서 고기 냄새가 많이 났고 채소는 토마토, 오이, 상추가 전부였다. 그나마 바가가즈린출루 숙소 음식은 먹을만 했지만, 사진은 없다. 아침으로는 주로 소세지(아마도 양 혹은 염소가 들어간 것 같은), 간단한 채소(토마토와 오이), 팬케익 등이 나오더라. 러시아의 영향인지 따뜻한 물과 홍차를 준비해 두는 곳이 많았다.

 
식사 후에는 맑은 날씨를 즐기며 캠프 주변을 거닐다가 다음 지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 짐을 다 싼 후에도 시간이 많이 남아서 야외 정자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여행 내내 올가 토카르추크의 '태고의 시간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언젠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라고 해서 샀는데 펴보지도 않고 몇 년을 방치한 책... 지금 확인해보니 5일간 절반 정도 읽었다. 처음에는 이야기의 파편들뿐이라서 다소 혼란스러운 감이 있는데, 읽을수록 퍼즐이 맞춰지며 태고를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꿰뚫는 작가의 의도가 읽힌다. 나머지 절반은 언제 읽게 될까... 
 
바가가즈링출루 숙소에서 지내는 내내 현지인들이 기르는 소 구경을 많이 했다. 캠프에서 기르는 소들은 아니라서 울타리 안으로 넘어오면 내쫓기도 하는데 적극적으로 내쫓는 건 아니라서 가까이에서 쳐다볼 기회가 많았다. 자세히 보니 소들이 참 예쁘게 생겼더라. 특히 송아지들이 아주 귀엽다. 몽골인들은 어린 양을 도축해서 먹는 걸 도덕적이지 않다고 여긴다던데 송아지는 어떨까. 이렇게 소, 양, 염소 등 동물들이 항상 곁에 있는 삶이라면 고기를 섭취하는 데에 더 신중해질 것도 같다. 
 

 
숙소 전경. 다른 팀들이 모두 떠나고 우리는 10시가 다 되어서 출발했다. 거의 24시간을 보낸 바가가즈린출루 숙소 안녕!
 

 
울란바타르를 지나 저녁이 다 되어 테를지에 도착하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사진이 없다. 앞으로는 블로그를 위해서라도 사진을 수시로 찍어야지 결심한다. 
 
울란바타르에 도착하기 직전에 얼마 전 100주년 행사를 했다는 울란바타르 근교 도시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큰 마트가 함께 있는 곳이어서 관광객들이 많이 들르는 곳이라고 한다. 피자와 몽골 사람들 주식이라는 양고기 빵(?), 그리고 간단한 채소 요리를 먹었다. 마트에서 맥주를 사려고 했는데 술이 있는 곳에 통제선이 쳐있고 오늘은 술을 팔지 않는다고 쓰여 있다. 가이드님께 물어보니 매달 1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 퇴치의 일환이라고. 이런 식으로 술의 유해성을 인식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술 적당히 마셔야지. 
 
울란바타르에 진입하고 나서부터는 차들이 거의 기어가기 시작했다. 울란바타르 남쪽의 Dunjungarav St. 이라는 자이산 근처의 도로였다. 자이산은 서울의 강남에 빗댈 수 있는 부촌으로, 값비싼 맨션, 레지던스 등이 모여있는 울란바타르의 한 지역이다. 가이드님 말씀으로는 울란바타르에서 테를지로 가려면 이 도로를 꼭 지나야 한단다. 여기를 지나간 이후에 울란바타르 시내 여행 욕심이 사라졌다... 시내 중심의 Seoul St. 라는 곳도 새벽까지 교통체증이 심하다고 한다. 최근 나라가 급속하게 성장하며 최대 도시인 울란바타르도 빠른 속도로 팽창 중인 것 같은데, 도시계획 관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가 많아 보인다. 한국 기업이 시행하는 울란바타르 지하철 공사가 조만간 시작한다고 하는데,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울란바타르에서 젊은 가이드님을 내려드리고 우리 셋은 동쪽의 테를지로 향했다. 시간이 늦어져서 칭기즈칸 기마상은 포기하고 승마를 택했다. 우선은 테를지 대표 관광지인 거북바위에 도착했다. 대단한 건 없으나 대단히 큰 거북이 모양 바위가 있다. 한국에 두고 온 우리 거북이가 생각났다. 호텔링한 렙타일샵 사장님 말씀으로는 엄청나게 잘 먹고 잘 지냈다고 한다. 어떤 사료를 줘도 맛있게 잘 먹었다고. 장하다. 
 
사진의 돌무덤이 지나가다가 종종 보이기에 가이드님께 여쭤봤더니 사람 무덤이라고 하시던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근처의 신에게 안녕을 기원하는 돌탑 같은 것이라고 한다. 몽골인 가이드님 왜..? 언어 때문에 생긴 미스커뮤니케이션이겠지. 
 

 
거북바위 다음에는 아리야발(Aryapala) 사원에 방문했다. 오후 여섯 시까지 입장할 수 있다고 나와있었는데, 여름이어서 그런지 여섯 시 조금 지나서도 들어갈 수 있게 해주더라. 차에 오래 앉아있어서 몸이 찌뿌둥했는데 가볍게 등산하는 코스여서 좋았다. 날씨는 계속 흐렸다. 
 

 
마침 여행 직전에 티베트 여행 유튜브를 보고왔던 터라 이 원통들이 반가웠다. 원통을 돌릴 때마다 불교 경전을 읽는 효과가 난다고 한다. 몽골 사람들은 과반수가 티베트 불교를 믿는데, 우리 가이드님은 교회에 나가신다고 했다. 
 

 
사원 꼭대기에서 바라본 몽골의 알프스 산맥이다. 지금도 충분히 예쁜데 날씨가 좋으면 훨씬 아름다웠을 것 같다. 
 

 
사원 오르는 길에 찾은 경전 문구 하나. 그래 중생들아 아둥바둥 겨루지 말자. 코메디란다. 문구들이 전반적으로 잔인한 편이었다. 
 

 
고대하던 승마! 몽골에서 우리는 두 번의 승마를 했다. 두 번째 승마에 비하면 테를지에서의 승마는 아주 평온했다. 남편이 탄 말이 이제 퇴근하고 싶다는 듯 멈춰서곤 했지만, 쳉헤르에서의 두 번째 승마에 비하면 이건 말썽도 아니었다... 내가 탄 말은 비가 온 직후의 땅이라 한 번 미끄러지기는 했지만, 이외에는 얌전하게 잘 걸어가 줬다. 사실 마부가 앞에서 우리 말들을 내내 이끌어 줬기 때문에 말썽이 생길 일이 없었다. 말을 탈 때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았다. 약간 흐린 날씨에 하는 승마가 오히려 운치 있고 좋았다. 우리가 오기 직전까지는 하루종일 비가 와서 다른 사람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던데, 다행이었다. 
 

 
4박 5일을 함께한 미쓰비시 SUV를 찍은 사진이 있기에 한 컷. 무려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험한 몽골 도로에서는 튼튼한 일본 차가 최고라는 가이드님의 일본 차 찬양에 없는 애국심이 살짝 생길 뻔 했지만, 오프로드도 거뜬한 일본 차, 인정이다. 일본에서 건너온 중고차라서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는 것은 단점. 몽골 도로는 웬만하면 왕복 2차로라서 추월하기 위해 반대편에서 차가 오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보니, 가끔 가이드님이 반대편 차를 못 보고 추월을 시도하실 때 조마조마하긴 했다... 
 

 
우리가 몽골 여행 내내 마셨던 그 술이다! 어떻게 읽는지는 까먹었다. 찾아보니 인삼, 계피 등의 약재가 들어가 있다고 한다. 지금 우리집 찬장에도 두 병 들어있다. 이 날은 한국인들 입맛, 특히 남편 입맛에 딱이었던 허르헉과 함께 먹었다. 숯불에 잘 구워서 그런지 허르헉의 고기 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나는 감자가 맛있었다.
 
테를지 숙소가 아주 좋았는데 사진이 없다. 감흥이 없었나보다. 생긴 지 1-2년 정도 되어보이는 신축 숙소에다가 내부 화장실까지 있었다. 전기와 온수도 24시간 사용할 수 있었다. 웰컴 백 투 문명. 짐작컨대 숙소 사장이 한국인인 것 같았다. 가이드님이 테를지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숙소가 꽤 많다고 했다. 사실 우리가 원래 예약한 숙소는 다른 곳이었는데 숙소 측에서 오버부킹을 했다고, 미안하다며 이곳을 예약해 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원래 가려던 숙소보다 숙박비가 비싼 곳이란다. 성수기에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숙소가 쾌적해서 화를 내기도 애매했다. 이 날은 비가 억수로 내렸다. 다음 날 쳉헤르까지의 이동이 걱정되는 수준의 억수였다. 그리고 걱정은 실제가 된다...

 
얼마 전 서촌에서 사주를 본 뒤로 꽤 오랫동안 사주에 미쳐있다. 8자 중 4자가 비겁인 팔자답게 남의 사주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내 팔자와 대운의 흐름을 열심히 해석하고 있다. (가끔 남편 팔자도 봐주긴 한다. 우리는 의외로 궁합이 아주 좋은 것이 신기하다.) 무튼 내 사주에는 인성의 역할을 하는 물이 하나도 없다. 예전에는 이걸 채워야 나에게 득이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 다시 공부해보니 나에게 아예 없는 요소는 용신이 될 수 없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이미 나무가 넘치는 신강 사주여서 인성의 도움을 받아 더 강해지면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를 극하는 금(金)이나 내 기운을 빼는 불(火)이 오히려 나에게 이롭다고 한다. 다만 요즘 역술인들은 다르게 풀기도 한다. 잘생긴 글자 하나만 잘 써먹고 산다면 균형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나는 두 관점을 적당히 다 받아서 대운의 흐름이 바뀌는 48세까지는 나를 극하는 관성(금)보다는 나를 표출하는 식상(불)을 비겁(나무)과 함께 발달시켜보기로 했다. 48세 이후에는 관성을 잘 써서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면 좋겠다. 묘묘병존을 가진 나무인 나는 안 그런 척하지만 관심받는 것을 좋아한다.

결론적으로, 28세부터 대운에 들어와있는 물과 나무의 기운에 질식되지 않기 위해 불로써 균형을 맞춰보려고 한다. 유튜브까지 손댈 기력은 없고 적당히 블로그가 괜찮지 않을까 싶다. 난 여행을 좋아하고 지금 몽골에 있으니까 여행기를 먼저 써본다. 내가 좋아하는 영화 얘기도 할 짬이 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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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31.-08.04. 몽골여행 기록.

어쩌다보니 몽골에 오게 되었다. 비행기 예약부터 출국까지 대략 2주가 걸렸다. 표가 없어서 얼떨결에 몽골항공 새벽 비행기를 비즈니스 좌석으로 끊게 되었고, 동행을 구할 시간과 여력도 없어서 남편과 단둘이 투어를 했다. 비즈니스가 생각보다는 저렴해서 기분 좋게 예약했는데 미리 예약해서 절반 가격에 다녀온 후기들을 읽으면 배가 아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무튼 비즈니스 좌석 경험 자체는 만족스러웠다(단, 인천->울란바타르 편도 한정! 울란바타르->인천 좌석은 아주 달랐다). 3시간 반 정도의 비행시간동안 새벽 밥도 야무지게 먹고 한 시간 넘게 편하게 잤다. 소고기 스테이크, 연어, 감자 다 맛있었다. 더부룩할까 봐 빵은 패스했는데 돌아갈 때에는 저녁이니까 제대로 먹어봐야지.
 
예정보다 일찍 착륙한데다가 입국 심사와 짐찾기 모두 후다닥 끝나버려서 투어사보다 한참 일찍 입국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 시간정도 공항 구경을 하며 기다리니 투어사 사장님과 가이드겸기사님이 오셨는데, 예상치 못하게 가이드님이 한 분 더 오셨다! 우리는 SUV를 예약해서 가이드겸기사님 한 분과 함께 셋이서 돌아다닐 것이라고 들은 상태라 다소 의아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큰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 따로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나중에 들어보니 아주 복잡한 속사정이 있었다. 결국 잘 해결되었으니 다행이지만 여름 성수기의 몽골 관광업계는 많이 혼란스러운 듯 하다. 관광 수요를 허겁지겁 따라가다보니 차량, 숙소 등 자잘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아주 오래 사신 다른 가이드 분은 중간에 울란바타르로 돌아가셨는데, 결론적으로 흥미롭고 즐거운 만남이었다. 덕분에 울란바타르의 부촌이라는 자이산(Zaisan) 구경도 슬쩍 했다. 
 

 
다시 첫째 날 이야기로 돌아와서... 해가 뜨기도 전에 우리는 바가가즈링출루(Baga gazriin chuluu)로 향했다. 나중에 가이드겸기사님과 한잔 하며 들어보니 보통 이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면 운전이 위험해서 공항에서 시간을 더 보내다가 해가 뜨기 시작하면 행선지로 출발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전술한 속사정 때문에 작은 트러블이 발생했던 터라 가이드겸기사님이 생각하시기에 더 문제를 일으키면 안되겠다 싶어서 그냥 바로 출발하셨다고 한다... 나와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 바로 출발하면 되는 거 아닌가용? ㅎㅎ"하고 차에 타 있었다. 조명, 노면, 도로 위의 느긋한 무법자(?) 등 몽골의 도로 상황은 한국과 여러모로 다르다. 무튼 그렇게 우리는 바가가즈링출루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고 덕분에 도로 위에서 멋진 일출을 볼 수 있었다. 이 한국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바라보며 비로소 우리가 정말 몽골에 도착했음을 느꼈다.
 
위 사진과 같은 포장도로를 달리며 "몽골 도로 상태가 안 좋다더니 역시 그렇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후 비포장도로를 달리며 방금 전의 요철은 귀여운 수준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 보는 수준의 비포장… 우리는 4박 5일의 비교적 짧은 일정이기 때문에 테를지, 미니사막, 쳉헤르 등을 가는 중부투어를 선택했었는데, 몽골에 가서 고비사막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오면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에 미니사막 엘승타사르해를 빼고 바가가즈링출루를 첫 번째 코스로 추가했다. 이 제안을 투어사에 말씀드리니 상담해 주시던 분이 아주 곤란해 하며 길이 상당히 험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는데.. 몽골의 비포장도로를 경험해 보고 나서야 그 경고의 진짜 의미를 알았다. 특히나 이전 주에 비가 많이 와서 군데군데 땅이 파여있었고 큰 돌도 많아서 미쓰비시 SUV가 사륜구동이 아니었으면 분명히 문제가 생겼을 것 같다. 와중에 이런 비포장도로를 감속 없이 달리는 푸르공들을 보며 아 푸르공이 감성만 있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물론 SUV는 잔고장이 거의 없고 포장도로 승차감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바가가즈링출루로 향하는 길 외에는 포장도로의 지분이 높고 쳉헤르 온천에 갈 때에는 어차피 비 때문에 푸르공을 빌려 탔어야 하므로, 결과적으로 SUV는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우리의 첫 숙소! 바얀불락(Bayanbulag) 투어리스트 캠프라는 곳이다. 고비사막 캠프들은 상태가 좋지 않은 곳도 많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예상보다 샤워시설도 괜찮고 게르도 동물 가죽 냄새가 조금 나는 것을 제외하면 좋았다. 이후 중부지역의 숙소들은 수준이 점점 좋아졌기 때문에 첫 숙소로 로컬에 가까운 게르가 배정된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 식사는 몽골 캠프식 중 최고였다. 아침 일찍 도착했기 때문에 삼겹살을 먹은 저녁을 제외하고 아침, 점심, 다음 날 아침까지 총 세 끼를 이곳에서 먹었는데 모두 맛있게 먹었다(심지어 염소고기까지). 다만 이때까지는 그 식사가 아주 맛있는 편이라고 생각 못 했었지... 전기와 온수 사용이 가능한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인터넷은 물론이고 통신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 정도는 이 지역 캠프면 당연한 거라고 했다. 덕분에 남편은 회사 연락을 전면 차단할 수 있는 좋은 명분이 생겼다.

 


분명 날씨가 괜찮았는데 우리가 다시 차를 타고 바가가즈링출루 구경을 시작하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이때는 몰랐지 이 먹구름이 우리의 여행을 어떻게 바꾸게 될 지... 바가가르징출루는 사진처럼 평원에 크고 작은 화강암 암석 지대가 펼쳐져 있는 곳이다. 고비사막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지 전형적인 몽골 초원과 사막 지역 중간 쯤의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다. 고비사막 투어를 하는 팀은 바가가즈링출루를 제외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던데 평화로운 중부투어에 야생을 한 스푼 더하고 싶었던 우리에게는 좋은 선택이었다고 자평한다.
 


이 때는 날씨가 다시 괜찮아보이는데 아마 내 뒷편에는 먹구름이 끼어있었을 거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장소명을 모르겠는데 사진 위치정보를 확인하니 'Dundgovi'라고 나온다. 20세기 초 소련이 영향력을 발휘할 때 불교를 탄압하며 스님들을 학살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여기에 스님들이 도피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입구는 좁고 의외로 암석으로 둘러싸인 안쪽에는 큰 공간이 있어 은신처 같은 느낌이 든다.
 
여기 말고도 몽골 제국의 수도 하라호름을 비롯한 몽골 곳곳에서 사회주의 세력에 의한 탄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몽골의 기성 세대들은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감정의 골이 깊은 편인데, 젊은 가이드님의 얘기를 들어보니 젊은 세대들은 성장하고 있는 중국에서 경제적 기회를 탐색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고도 한다. 바다가 없는 내륙국가인 몽골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등 주변국의 관계를 되돌아보게 된다. 가진 것이라곤 인적자본뿐인 우리나라는 태평양과 접해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듯 하다. 우리나라 초기 세팅값이 최악이라고 생각했는데 몽골에 비하면 양반이다. 심지어 몽골은 지하자원도 풍부한 편인데 지정학적 여건이 너무 불리하다. 그것이 징기즈칸의 몽골 제국이 영토 확장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이유들 중 하나 아닐까. 
 


가이드님이 이 풀에 쓸리면 화상입은 것처럼 피부가 다친다고 주의하라고 해서 찍어둔 사진.

 
울퉁불퉁한 골목을 지나오면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몽골 초원과 사막에서는 이렇게 큰 나무들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스님들이 숨어 지냈던 돌로 된 은신처를 지나 약간의 등산을 하고 나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 인생샷 스팟이 몇 군데 있어서 젊은 가이드님이 열정적으로 사진을 남겨주셨다. 날씨만 맑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여기는 또 다른 곳. 아주 깊은 동굴이다. 관광객들이 줄을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 밖으로 각도를 잡으면 인물 사진이 잘 나오는 듯. 가이드님이 산양 똥이 보인다고 하셨는데 직접 보지는 못해서 아쉽다. 사람들이 많이 와서 도망간 걸까.
 
동굴에서부터 가랑비가 장대비로 바뀔 기미가 보여서 급히 숙소로 돌아와 저녁 전까지 재정비 시간을 가졌다. 찬물 샤워(온수가 안 나와서...)를 하고 숙소 근처를 산책했다. 몽골에서는 특별히 관광지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시간을 보내는 것이 즐거웠다. 여행 취향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겠지만 나는 지평선이 보이는 조용한 곳에서 산책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 그저 좋았다. 게르에서 쉬고 있으니 가이드님들이 저녁 준비가 다 되었다며 식당으로 부르셨다. 몽골 여행 첫째 날에 삼겹살을 먹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래도 역시나 삼겹살은 맛있었다. 가이드겸기사님이 몽골 약주를 준비해 오셔서 함께 먹었다. 약재향이 나는 도수 높은 술이었는데 찾아보니 잘 나오지 않는다. 여행 내내 이 술 아니면 맥주를 마셨고, 마지막 날에 가이드겸기사님이 선물까지 해주셨다! 사업차 몽골에 방문하는 한국분들이 되게 좋아하신다고 한다.
 

 
다행히 밤이 되니 하늘이 개기 시작했다! 사막 지역이 별이 잘 보인다고 해서 한국에서부터 기대를 했는데 구름이 많아서 걱정을 하고 있던 차였다. 
 

 
새벽 두 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깨서 게르 밖에 나와보니 쏟아질 듯한 별이 보였다. 이 순간을 위해 한국에서 돗자리를 가져왔다. 달이 숨은 시기라서 잠시 돗자리에 누워 있으니 은하수는 물론이고 유성까지 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사진에 모두 담지는 못했고… 눈에 담았다. 4박 5일 중 유일하게 별을 본 날이다. 이후 이틀은 비가 쏟아졌고 마지막 쳉헤르에서는 여독이 쌓였는지 너무 졸려서 새벽에 깨지 못했다. 남편만 잠깐 나갔다가 왔는데 그 날도 별은 잘 보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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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블로그 글 하나 올리는 게 쉽지 않다... 비오던 날 테를지 숙소에서 작성을 시작했는데 폭염 속 서울에서 작성을 마친다. 하나 완성하기까지 거의 2주가 걸렸다. 별 내용도 없는 것 같은데. 쓰다보면 점점 익숙해지겠지?
 
이제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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