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라는 걸 써본지 꽤나 오래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2년이었다. 2년 동안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통계를 다루는 실력이 조금 늘었고, 한국어 논문을 쓰는 요령이 생겼다.

영어 스피킹 실력이 줄었고, 자존감도 조금 약해졌다.

강력한 내 편이 생기고, 꾸준히 하는 취미가 몇 가지 생겼다.

나와 남을 비교하고, 남들의 생각을 의식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연구보다 인간관계가 더 어렵다. 

지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조금 지쳤다. 동기부여가 어렵다. 

남 탓을 하고 싶지는 않은데, 자꾸 하게 된다. 재미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

 

3년 전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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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왔다.

가족관계등록 업무의 일종인 혼인신고는 주민센터에서는 접수가 되지않고 시, 구, 읍 또는 면 단위에서 처리한다. 인터넷으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혼인신고서 양식을 프린트해서 작성해도 되지만 구청이 집에서 멀지않아 털레털레 가서 한 장 뜯어와 읽어봤다.

애초 혼인신고는 둘의 편의를 위한 행정처리 정도의 의미였기 때문에 엄청난 돈, 시간, 노동력을 할애해야하는 결혼식보다는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식은 꽤 능동적으로 거부한 편이지만(귀찮으니까!) 혼인신고는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기도 했고. 결국 둘 다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서명할 순간이 다가오니 그게 생각 같지 않더라. 부모님 등록기준지는 왜 적어야 하는지 잠깐 의아했지만 이내 넘어가기로 했다. 문제는 4번 '성•본의 협의'였다.

향후 태어날 자녀에게 아내의 성과 본을 물려주는 협의를 했냐는 질문이었는데, 여기에 '예'로 답하려면 별도의 협의서를 제출해야한단다. 물론 남편의 성과 본을 물려주는 것은 그 어떤 협의나 별첨서류 없이 가능하다.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자녀를 가질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여기에 벌써 '예' 혹은 '아니오'를 하고 싶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마음을 바꾸는 것이 가능한지 찾아봤다. 답은 '불가능', 협의이혼을 하고 다시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가정법원에 가서 '자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의 변경을 신청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재혼가정의 사례이고 아직 엄마의 성을 물려주기 위해 신청한 사례는 없음, https://m.hani.co.kr/arti/society/women/983160.html). 자녀를 가질 계획도, 나의 본을 잇고자하는 욕심도 없었지만, 여태 실감하지 못했던 (하지만 분명 날 둘러싸고 있던) 지독한 부계사회의 맛을 보고나니 자녀 까짓거 낳아서 내 성을 물려줘버리자는 생각까지 들 지경이었다.

일단은 뒷면 작성방법에 '3, 4, 5, 8번 란은 해당되는 사람만 기재'하라기에 4번 란은 어디에도 체크하지 않은채로 접수대에 제출해보았다: 한국 국적이라면 모두 작성해야한단다. 그 자리에서 '아니오'에 동그라미를 치고 나의 작은 투쟁은 그렇게 끝났다. 

커다란 벽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비교적 난이도가 높은 한국 사회에서 지금껏 꽤나 자유롭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권위적이지 않고 든든한 부모님 덕에 가부장제를 직접 맞닥뜨릴 일이 거의 없었고, 나만 조금 더 노력한다면 여자여서 못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늘에야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적어도 가정을 구성할 때에는) 남자가 여자에 우선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편(구 남친)은 어짜피 낳지 않을 건데 상관없지 않느냐고 했고, 친구는 한국에서는 아버지 성을 따르는 것이 보편적이니 그게 낫다고 했다. 만약 나중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묻는다면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아직도 자녀를 가질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나를 괴롭힌 것은 자녀에게 나의 성을 물려주려면 출생신고도 아닌 혼인신고 시점에서, 별도의 협의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지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내게는 일종의 폭력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몇 번의 불합리에 눈감아야 '평범'한 신부, 아내, 며느리가 되는 걸까.

 

한국 사회에서 자녀에게 아버지의 성을 물려주는 것은 숨쉬듯 자연스럽다. 하지만 잠깐 숨을 멈추고 생각해보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이 사회에서 어머니의 자리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다시금, 모두가 행복해보이는 세상에서 혼자 불편한 사람이 되는 건 이리도 힘든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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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오월의 월기:

 

또 한번 반환점을 맞는다. 한국에서 한국으로의 이동이고, 이번에는 차도 있으니 난이도는 높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반환점이고, 세끼 챙겨먹는 법, 출퇴근길, 여가시간,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가을부터는 공부를 다시 시작한다. 설레는 일이다. 공부도, 이사도.

 

내가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게 느껴지는데, 나의 중심과 도전의 영역을 잘 구분하는 것이 필요하다. 

 

내년 초의 반환점이 더 대단한 반환점일 것 같기는 하다. 나의 인생은 이제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벌써부터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옆에 누군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중심, 경제권, 혼자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

 

심리상담은 목요일에 3회차로 끝이 났다. 내가 부모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되짚어볼 수 있었고, 그게 내가 새롭게 형성한 관계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 투덜거리고 내가 살아남을 길을 찾자는 결심을 했고, 내가 나쁘지 않게 살아왔다는, 예상치 못한 칭찬(?)을 듣기도 했다. 적절한 시점에 받은 괜찮은 조치였다고 자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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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적으로 글은 한 달에 한 번 쓰게 되었다.

 

특별히 달리 할 얘기도 없으니 그동안 글을 쓰지 못한 사정에 대해 풀어내보자면, 3월 내내 필기시험, 면접 준비로 마음이 바빴고(사실상 공부를 한 시간은 길지 않지만), 차를 사고 그에 딸려오는 부수적인 것들을 챙기느라 바빴고, 내 생일(!)이었고, 발주처가 아주 많이 괴롭게 했다. 3월에는 게으름을 정말 많이 부렸지만, 꽤 많은 일을 하기도 했다. 나는 바쁜 만큼 게을러지는 것 같다. 

 

요근래 인생이 격동하고 있다. 내가 잘 하고있는 건지 불안해서, 회사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심리상담 신청을 했다. 상담 전 인성검사지를 작성하는 데에 꼬박 일주일이 걸렸지만, 예약 잡는 게 더 힘들었다. 세종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평화로워보이지만 그 내면으로는 많이 힘든걸까. 사람과 부딪히는 것이 싫어 이 직업을 선택한 건데, 나의 직업생활을 좌우하는 것은 결국 또 5할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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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아직 아니지만, 올해 꽤 많은 친구들이 아홉수에 접어들었다. 29살이란 나이는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다가오는가? 결혼적령기, 최소한 사회초년생은 되었어야하는 시기, 중요한 진로결정을 한 번은 내렸어야하는 시기?

 

고작 나이로 누군가의 인생을 재단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앞으로도 사람의 나이를 자동차의 연식처럼 여기는 바보로 변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누군가가 나의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순간이 되었을 때, 표면적으로라도 사회문화적 (악)관습을 따른다면 나에게 쏟아지는 질문이 절반으로 줄고 피곤한 대화를 덜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잠깐의 인내로 얻을 수 있는 그 안락한 감각은 매우 달콤한 것이라, 한국 사람들이 왜 그토록 모든 것의 적령기에 집착하는 것인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또, 이내 이런 생각이 들고 마는 것이다: "나의 인생의 템포와 저들의 것은 한참 다른데, 억지스럽고 불편하게 발걸음을 맞춰 가는 것이 굳이 필요한가?", "이 안락감, 그렇게 가치있는 것인가?". 주체적으로 고민하고 생각하며 살고 싶지만, 불필요한 에너지를 내 인생에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쓰고 싶지 않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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