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 마지막 날의 해가 밝았다. 오늘은 전 일정 중 가장 긴 이동이 예정되어있던 터라 새벽에 일어나야 했다. 가이드님이 먼저 우리를 깨운 건 처음이었다. 나는 어제 씻지 못하고 잠들었기 때문에 짐은 대충 싸고 급하게 샤워실로 향했다. 사용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샤워부스를 골라서 들어갈 수 있었지만 어느 부스에서도 만족스러운 물줄기를 즐길 수는 없었다... 
 

 
찝찝하지 않을 정도로만 몸을 씻고 게르로 돌아오는 길. 우리 부부의 여행에서는 대부분 마지막 날의 날씨가 제일 좋았다. 하와이에서도, 보라카이에서도, 몽골에서도. 맑은 하늘 아래의 몽골은 정말 아름답다. 
 

 
노천탕은 이제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샤워실로 씻으러 들어갈 때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게르로 돌아가는 길에는 아저씨 한 명이 탕 안에 들어가 계시더라. 이때는 온천수가 좀 뜨거울 수 있다고 후기에 쓰여있지만 그래도 새벽에 들어가면 저녁이나 밤에 비해 훨씬 쾌적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비포장도로를 달려 우리의 미쓰비시 SUV를 두고 온 주유소로 향하는 길. 잠깐 멈춰설 때마다 타르박인지 마멋인지 설치류처럼 보이는 동물이 눈에 띄었다. 마멋을 구글링하면 무섭게 생긴 아이들 사진이 많이 뜨던데 내가 본 친구들은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었다. 
 
포장도로와 재회하고 주유소에서 차를 갈아탄 우리는 울란바타르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얼마 동안 뒷자리에서 졸며 시간을 보내고 나니 가이드님께서 잠깐 CU에 들러서 아침을 먹자고 하셨다. 숙소에서 아침을 포장해 오기도 했고, 몽골 CU에서는 커피, 샌드위치, 삼각김밥(!) 등 다양한 요깃거리를 판다. 지금까지 블로그에서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차를 오랫동안 탈 때면 CU에 종종 들러왔다. 요즘 몽골에는 CU가 곳곳에 많이 들어와 있는데, 이날 들른 곳도 유동인구가 거의 없는 시골 마을에 있는 CU였다. 가이드님도 이런 시골에 CU가 들어와 있는 것이 신기하다고 하셨다. 잠깐 앉아있다보니 트럭 운전사와 같이 길게 여행하는 현지인들이 잠을 깨고 요기를 하기 위해 즐겨 찾는 것 같았다. 나는 달리 먹고 싶은 건 없어서 숙소 아침(빵, 오이, 계란 등 일반적인 캠프식)과 함께 따뜻한 라떼만 한 잔 마셨다. 특이하게 여기서는 커피머신으로 일반 아메리카노를 내린 후 흰색 가루를 타서 라떼를 만든다. 한국 CU에도 이게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루에 단 맛이 들어가 있어서 한국에서 먹는 믹스커피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고급스러운 맛이랄까. 그 맛이 의외로 괜찮아서 두 번 정도 마셨다. 무튼 몽골 시골 마을까지 야무지게 자리잡은 CU 대단하다. 
 

 
잠깐의 휴식을 마치고 한참을 달리던 중 어르헝 계곡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셋째 날에 어기호수에 가며 잠시 들렀던 하라호름을 지나치게 된 것이었다. 새벽부터 달려와 시간 여유도 조금 생겼고, 기사님도 어딘가에서 마트를 들러야겠다고 하시기에 하라호름 박물관에 가자고 제안을 했다. 에르덴조 사원에는 폐장시간에 임박하여 도착해서 실내 전시실을 돌아보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었다. 기사님은 흔쾌히 승낙하셨고, 본인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는 동안 젊은 가이드님과 셋이 둘러보고 오라고 하셨다. 

하라호름 박물관 입구. 현대 몽골에서는 몽골식 키릴 문자를 사용하지만 원래는 몽골어를 표기하는 고유 문자가 있었다고 한다. 몽골 여행 중 흔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종종 그림 액자 등에서 꼬불꼬불하고 길쭉한 몽골 문자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여기 박물관 입구에도 쓰여 있었다.
 

 
하라호름부터 주요 도시까지의 거리를 나타낸 표지판. 울란바타르까지 아직 360km…
 


13세기 칭기즈 칸의 셋째 아들이자 몽골 제국의 두 번째 칸이었던 오코타이 칸에 의해 건설된 하라호름의 모습을 나타낸 모형이다. (사실 박물관 내부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상당히 비싼 사진 티켓을 구입해야 했다… 그 사실을 미처 모르고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자마자 직원에게 제지를 당했다.) 왼쪽에 성대했던 에르덴조 사원이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당대에 벌써 전세계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사는 코스모폴리탄이었다는 하라호름. 사진은 못 찍었지만 박물관 근처, 옛날 하라호름의 중심이었던 자리에는 은나무(Silver Tree)라는 거대한 나무 모양 조각이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화려함이 지금은 사라진, 하라호름의 옛 영화를 나타내는 듯 했다. 심지어 과거에는 나무에서 우유, 전통주 등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었다고 한다.


박물관 본관 옆에서는 몽골 전통놀이 특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아래는 양의 발목뼈로 만든 주사위(!) 샤가이이다. 젊은 가이드님 얘기로는 옛날에 할머니 집에 가면 이게 잔뜩 있었다고 한다. 할 수 있는 게임 종류가 많은데, 공기 같이 노는 방법도 있고 네 개를 던져서 서는 방향에 따라 하루의 점을 쳐볼 수도 있다고 한다. 나도 던져봤는데 네 개가 전부 다른 가축(양, 말, 낙타, 염소)을 나타내는, 가장 좋은 운수가 나와서 기분이 좋았다.


마트에 들러서 물을 사오신 기사님과 다시 만나고 울란바타르로의 여정이 계속 되었다. 돌아가는 길에는 지난 날 비가 쏟아져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던 엘승타사르해(미니 사막)에도 잠깐 들렀다. 낙타들은 인도에서 봤던 애들보다 건강해 보였다.


도로에서 만난 말들. 갑자기 차가 느리게 가기에 주위를 둘러보니 말들과 마부들이 곳곳에 모여있었다. 승마대회인지 어떤 행사가 개최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구경하고 가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지만 갈 길이 멀기에 말을 삼켰다.


넓디넓은 초원만 반복되는 차창 풍경을 보고 있다보면 새로운 자극이 소중하다. 가끔 저렇게 넓은 노란색 꽃밭이 나오더라. 무슨 꽃인지는 두 가이드님도 알지 못 했다.


이건 그냥 하늘과 구름이 예뻐서. 마지막 초원 사진이다!


울란바타르 시내에는 진입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초입에 젊은 가이드님을 내려드렸다. 울란바타르 서쪽 끝에 내려드렸는데 가이드님은 동쪽 끝에 사신다고… 죄송합니다… 하지만 울란바타르의 교통체증을 또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 몽골에 또 오게 되면 울란바타르에 숙소를 잡고 둘러봐야겠다. 무튼 젊은 가이드님과는 여기에서 굿바이. 내리기 전에 메모장에 적어두신 할 말(덕분에 재미있는 여행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이드님은 전문 가이드가 아닐뿐더러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신 참이라 국내 여행을 거의 못 해봤다고 하셨다)을 읽어주셔서… 눈물이 찔끔 날 것도 같았다. 다행히 요즘 세상에는 인스타그램이 있어서. 영원한 굿바이는 아닐지도!

우리는 울란바타르 시내 대신 고비 캐시미어를 선택했다. 가이드겸기사님의 추천으로 시 외곽에 있는 팩토리 스토어에 방문했는데, 물건도 많고 괜찮았던 것 같다.여기 밖에 안 갔기 때문에 비교는 불가하다. 한국인들이 정말 많았다. 나와 남편 것으로는 니트를 하나씩 사고, 양가 어머니들 머플러를 공평하게 하나씩 샀다. 가격이 싸지는 않은데, 캐시미어 질은 좋아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칭기즈 칸 공항에 도착했다. 점심도 거른 터라 배가 많이 고팠는데, 공항 1층에서 라멘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여기서 가이드겸기사님이 보따리 하나를 푸시더니 우리가 항상 먹던 몽골 술(!)과 함께 몽골 잣을 선물로 주시는 것 아닌가. 우리도 마침 최종(두 번째) 팁을 드리려고 했는데… 흡사 자강두천.

여행 내내 가이드겸기사님과 두 젊은 가이드님들 덕분에 정말 편하게 다닌 것 같다. 막연하게 가이드와 함께 하는 여행은 내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왔었는데,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걸 깨달은 몽골 여행이다. 가이드님들이 있으니 여행이 더 풍부해지기도 하더라. 물론 좋은 가이드를 만나는 운이 따르기도 해야겠지만.

마지막으로 가이드님과 굿바이를 하고, 수하물을 부치고, 출국장으로 들어왔다. 마그넷을 사려고 둘러봤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대신 샤가이를 팔고 있기에 4개 구입했다. 몽골항공 비즈니스 라운지가 있어서 자리를 잡았고, 병맥주(생맥주는 다 떨어지고 없었다)와 샐러드(여행 내내 싱싱한 채소가 너무 먹고 싶었다)를 주워 먹었고, 태고의 시간들을 조금 더 읽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장의 상태가 안 좋아지기 시작해서… 남편은 여행 다녀와서 거의 일주일을 고생했다. 마지막 숙소에서 먹은 저녁이 제일 의심이 간다.


무튼 이렇게 4박 5일 몽골 여행은 끝이 난다! 여행 블로그는 생전 처음 써보는데, 이렇게 곱씹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릴 기억들을 붙잡아 둘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미 한 달이 지난 여행이지만 그 때의 마음이 다시 재생되기도 하고, 익숙한 사진을 보며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르기도 한다. 앞으로도 여행을 가게 되면 꾸준히 써 볼 예정이다. 지난 달에는 여행 말고도 대소사가 참 많았는데, 조만간 생각 정리 블로그도 써 봐야겠다.


전날 술을 마셔서 그런지 넷째 날 아침에는 눈이 일찌감치 떠졌다. 저녁 늦게 도착하여 제대로 눈에 담지 못한 어기호수를 구경할 겸 달릴 채비를 했다. 남편은 더 잔다고 했다.


호숫가를 조금 달리고 멀리서 우리 숙소를 찍은 사진. 어제보다는 날씨가 한결 개었다. 호수는 정말 넓어서 바다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날이 좋으면 수영도 할 수 있다던데, 역시나 오늘도 날씨가 아쉽다. 호숫가에는 똥이 많아서 잘 피해서 뛰어야 했다. 비가 온 뒤여서 그런지 벌레는 많지 않았다.


조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며 찍은 사진. 가운데 큰 건물에 식당과 화장실/샤워실이 있고, 우리는 게르 옆에 보이는 네모난 집에 묵었다.

남편과 아침식사를 하고 방에 돌아왔다(여기 소시지는 냄새가 정말 많이 났다). 쉬다가 가이드님께 전화를 드리니 우리 방에 와서 일정 브리핑을 해주신다고 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는데, 우선 울란바타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길에 야생말을 볼 수 있는 국립공원(지금 찾아보니 Hustai National Park란다)에 들러 하루 묵는 방법. 투어사에서는 이쪽을 선호하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이동거리가 줄어들테니까. 아니면 전날 대체지로 언급되었었던 어르헝(Orkhon) 폭포에서 묵고 다음 날 울란바타르로 향하는 방법. 쳉헤르는 여전히 들어갈 방법이 없는 듯 했다.

남편은 나에게 선택권을 위임했고 나는 어르헝을 선택했다. 복원한 야생말이라니 흥미롭게 들리긴 했으나, 몽골 제국의 코스모폴리탄 수도가 자리잡았던 어르헝이 더 궁금했다. 이왕 서쪽 멀리 온 김에 여기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우리의 마지막 여행지는 어르헝 폭포로 결정되었다(… 결정되는 듯 했다). 이쯤 되니 몽골 여름 성수기에 숙소, 차량 등에 관한 문제가 자주 발생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하루 만에 숙소를 구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했다.


그렇게 행선지를 정하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다보니 투어사에서 연락이 왔다. 쳉헤르에 들어갈 방법이 생겼다고. 우리와 함께 어기호수에 묵었던 한 팀이 푸르공을 근처에서 빌릴 수 있게 되어서, 우리도 그걸 타고 쳉헤르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뜨끈한 온천이 간절했던 참이라 우리는 곧바로 제안을 수용했고, 기분 좋게 쳉헤르로 향했다. 다른 팀과는 쳉헤르로 들어가는 비포장도로의 초입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쳉헤르로 향하는 길에 만난 어르헝 계곡의 지류. 항상 산세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계곡들과는 다르게 넓은 평원을 가로질러 흐른다는 점이 생경했다.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기회가 되지 않았다. 다음에 몽골에 오게 되면 어르헝과 나이망 호수 지역을 둘러보고 싶다. 날씨운이 많이 따라줘야겠지만.


다른 팀에서 마유주를 산다고 해서 잠시 들른 현지인 게르. 말을 지키고 있는 개가 귀여웠다.


우리를 쳉헤르로 데려다 준 푸르공! 러시아 군용차였다는 푸르공은 대부분 몇십 년은 된 차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차가 손에 익은 푸르공 기사님들이 여행 내내 차를 고치고 관리하며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 푸르공의 주인인 기사님도 푸르공만큼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푸르공이 기다리고 있던 주유소 근처에서 간단하게 점심(꼬치구이와 맥주)을 먹고 쳉헤르로 출발했다.


역시나 곳곳에 웅덩이 천지였던 쳉헤르 가는 길. 구덩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차들도 몇 보였다. 그 차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쳉헤르 가는 길은 쳉헤르만큼이나 (어쩌면 쳉헤르보다) 아름다웠다.


우리의 푸르공도 언덕길에서 한 번 멈춰섰다. 고치는 데 시간이 꽤나 걸려서 쳉헤르에 들어가 있는 푸르공을 하나 부르려고도 했는데, 조금 더 기다리니 다행히 고쳐졌다. 푸르공을 타고 몽골 여행을 한다면 이렇게 쉬는 시간이 종종 생길 것 같다. 그것 또한 이런 풍경 속에서라면 괜찮지 않을까.


푸르공의 내부는 이렇다. 천장의 쿠션은 머리 박을 일이 많아서 설치해 둔 듯 싶다. 푸르공 내에서도 앞자리 뒷자리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우리는 오갈 때 모두 앞자리에만 앉았다. 뒤에도 앉아보고 싶었는데 동행한 젊은이들이 배려해 준 걸까. 쳉헤르행에 함께한 젊은이 네 명은 대학생쯤 되어보였는데, 점심 먹으면서 맥주를 나눠주었을 때 빼고는 이야기 나눌 기회가 없었다. 몇 년 전의 나라면, 혹은 혼자 여행 중이었다면 이 얘기 저 얘기 하며 긴 이동시간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 남편은 외향형(E)이면서 내향형(I)인 나보다 낯을 더 가린다. 외향-내향과 외성-내성 구분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던데 그런 문제인 걸까.


몽골에서 흔히 보이는 평원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던, 쳉헤르 가는 길. 누가 처음 이 산중의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을까.

쳉헤르에서는 한국인들 후기도 많은 항가이(Khangai) 리조트에서 묵게 되었다. 당일 예약을 한 셈이니 선택권이 거의 없었겠지만… 방문했던 4개 숙소 중에서는 제일 아쉬운 곳이었다. 우리가 묵은 게르에서는 난방을 위해 장작을 밤새 계속 투입해 줘야 했는데, 이를 놓치는 바람에 새벽에는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사실 이건 우리의 책임이니 숙소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그런데 저녁식사 후 남편과 나 모두 배탈이 난 건 우리의 책임이 아님… 폐장 직전까지 노천탕과 샤워실 모두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못 씻고 잔 것도… 심지어 아침에 일어나서 씻을 때도 물이 거의 빗줄기처럼 졸졸 나와서 힘들었다. 그동안 좋은 숙소에만 묵어버릇해서 버릇이 나빠진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4박 중 가장 힘든 날이었다.


우리를 괴롭힌 것은 숙소 뿐만이 아니었는데… 저녁식사 전까지 시간이 남아 승마체험을 다시 하기로 한 것이 화근이었다. 테를지에서 승마를 할 때에는 날씨가 흐렸어서, 맑은 날에 승마를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숙소 근처의 마부들에게 물어 승마체험을 시작했는데… 마부들이 따라 오지 않는 것 아닌가? 몽골인 가이드 두 분이 말을 탈 줄 아니까 넷이서 다녀와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헬멧도 쓰지 않았는데. 젊은 가이드님은 말을 타지 않은지 오래 됐다고 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거의 단독으로 승마를 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건 좋았다.

약 15분 정도 이동하다가 문제가 발생했다. 내가 타고 있던 말이 갑자기 멈춰선 것이 발단이었다(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내 말의 고삐에 이어진 줄을 잡고 있던 젊은 가이드님이 줄을 놓치자 모든 말들이 흥분하기 시작했다. 워낙에도 성격이 더럽다는 가이드겸기사님의 말은 이때다 싶었는지 날뛰면서 가이드님을 떨어트렸고… 젊은 가이드님도 말에서 떨어졌다. 가이드겸기사님으로부터 해방된 남편의 말은 저멀리 뛰어가기 시작했다. 남편은 말에서 내리는 법을 몰라 한동안 타고 있다가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 말의 엉덩이 쪽으로 내렸다고 한다. 이게 알고 보니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말이 흥분해서 발길질이라도 하면 얻어맞기 딱 좋은 위치라서 그렇다. 운이 좋았던 건지 나빴던 건지.

이 아수라장 속에서 문제의 발단이 된 나의 말만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가이드님들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말에서 내렸고, 가이드겸기사님은 내 말을 타고 도망친 말들을 잡으러 가셨다. 나와 남편은 놀란 것을 빼면 괜찮았는데 가이드 두 분은 손과 팔에 상처를 하나씩 남기셨다… 젊은 가이드님과 셋이서 터덜터덜 숙소로 걸어가고 있자니 기사님이 말들을 전부 되찾아놓곤 어린 마부들을 꾸중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들으니 가장 난리를 친 기사님의 말이 마부들의 말이 아니라 친구의 말인데 이들도 성격이 더러운 걸 알고 있었다고 한다. 이정도로 끝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엄청난 액땜이었다. 뭐 남편은 덕분에 달리는 말에도 타보고… 승마 실력이 순식간에 늘겠다(럭키비키..)


이렇게 대단한 모험을 하고도 시간이 조금 남아서 동네 산책을 시작했다. 이번엔 온천 수원지로의 모험이다. 소똥인지 말똥인지 알 수 없는 똥들을 피하며 산기슭으로 향하니 수원지부터 각 리조트까지 혈관처럼 연결되어 있는 파이프들이 눈에 띄었다. 정부나 기관 개입 없이 각 리조트에서 설치한 파이프들인지 모두 생김새가 제각각이었다.


이곳이 쳉헤르 온천의 수원지. 여기에도 몽골 성황당이 지어져 있다. 돌을 하나 올려놓고 기도를 드리는 듯한 현지인도 보였다. 유황 온천수가 적당히 뜨거워서 여기에 계란을 넣고 삶아먹는 것도 가능하단다.


숙소에 돌아와서는 잠시 자다가 저녁을 먹고 온천을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탕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잠깐 앉아있다가 나왔고 샤워실 줄이 너무 길어서 씻지도 못하고 잠들어야 했다. 외국인 관광객 뿐만 아니라 몽골 현지인 관광객도 많은 듯 했다. 곳곳에서 사진 찍는 소리가 들려서 부담스러웠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4일차가 끝났다. 블로그를 쓰며 기억을 되짚다보니 쳉헤르 말고 본래 계획대로 어르헝 폭포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된다. 그러면 쳉헤르에 아쉬움이 남았겠지?

이전에 적었듯이 밤에는 날이 완벽하게 개어서 별 보기 좋은 날이었지만 나는 쿨쿨 자느라 보지 못했다. 다음 포스팅은 드디어 여행 마지막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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